2021 모교 창립 136주년 서승환 총장님 기념 식사(05.08)

❇ 동문님께


창립 136주년 창립기념식사2021.05.08

존경하는 연세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창립 136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연세의 생일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이사장님과 각계 후원자님들 그리고 재학생, 교직원, 동문이 함께 모여 이날을 기뻐하고, 봄기운이 완연한 캠퍼스에 웃음소리가 가득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특별히 매년 이맘때마다 졸업 25주년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베레모를 쓰고 캠퍼스를 찾아주시는 동문님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섭섭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진다면, 올 10월에 동문님들을 다시 초청할 계획입니다. 뵙게 될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꼭 오셔서 새롭게 단장된 청송대와 미우관도 돌아보시고, 정겨운 학우들과 함께 추억의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국제캠퍼스를 젊음의 열기로 가득 채워야 할 21학번 새내기들을 캠퍼스에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 수업을 통해 대학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벌써 세 학기째 캠퍼스가 비어있다는 사실이 총장인 저로서도 믿기지 않을 지경입니다. 올해는 창립 축하의 말씀을 드리기 전에, 부디 건강하시라는 안부의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작년에 저는 연세대학교의 제19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학 교육 환경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이르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시 저는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환경을 “어떤 현상이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특정 방향으로 폭발적으로 변화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학령인구의 감소, 교육과 연구의 글로벌 경쟁 심화, 4차 산업혁명의 도전, 지속적인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인한 재정난 등으로 대학이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모두에게 이런 미증유의 교육 환경 변화를 촉발시킬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으로 캠퍼스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대학 교육이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고, 온라인 수업이라는 갑작스럽게 강제된 매체의 변화가 교실에서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이어져오던 대학 교육의 근본을 흔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교육과 연구의 기본 전제처럼 여겨졌던 이동의 자유는, 항공노선의 차단으로 일시에 막혀버렸고, 유학 가려는 학생과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하려는 연구자의 이동을 차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했던 연세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셨던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사냥꾼의 올무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약속하셨던 시편 91편 3절 말씀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연세와 함께 했습니다. 국내외 많은 대학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지금, 연세는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야기된 위기를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고, 더욱 힘차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동 제한과 격리 때문에 우리 사회 곳곳이 마비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작년 한 해 약 1,000억 원의 기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위기 때마다 특유의 회복력을 보여주었던 연세의 전통이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한 한 해였습니다. 피치 못할 운영 수지 악화가 예상되지만,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관리 한계 내의 어려움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는 전적으로 재단, 교직원, 학생, 동문으로 구성된 연세의 각 구성원이 함께 힘을 모은 덕분입니다.


저는 총장의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교육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해 왔습니다. 연세가 자랑하는 가장 큰 자산은 136년의 역사에 빛나는 명문 사학의 전통과 ‘공동체 정신을 지닌 혁신적인 리더’로 구성된 다양한 인적자원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계승·발전시키고 인적자원을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총장 입후보 때부터 설계했던 클라우드 기반의 혁신적인 디지털 교육 플랫폼, LearnUs(런어스)를 이번 학기부터 개설하였고, 정규 학위 과정 운영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연세 구성원들이 LearnUs를 국내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국내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오픈형 온라인 교육 플랫폼’으로 확장시켜, 올 8월부터 운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교육 플랫폼은 누구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지식 채널’이 될 것입니다. 연세 캠퍼스에서 개설되는 정규 수업을 외부와 소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내외 대학과 개별 전문가 집단이 LearnUs를 통해서 자신의 지식을 세상과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함으로써, 교육 매체의 혁신적인 변화를 선도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미 국내 16개 대학이 LearnUs를 통한 교육 서비스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입니다. 시대의 변곡점에 설 때마다 새로운 방향성과 가치를 제시해왔던 연세의 명문 사학 전통이 LearnUs를 통해서 대한민국 고등교육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작년 창립 기념일에 그 비전을 제시했던 연세 시그니처 클러스터 사업 5/6/7을 더욱 확대해서, 탁월한 연구자들에게 최적화된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할 계획입니다. 연세의 미래를 위한 모금 방식에 있어서도 기존의 이자 수익을 위한 원금 보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금 활용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국제적인 저금리 시대에 걸맞은 모금 문화를 선도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저는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하고 있는 2021년의 창립기념일을 축하하면서, 다른 해와 달리 정부와 교육 당국에 건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 제안은 대학의 현실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순간에 전 지구적인 충격을 안겨 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모두 고통을 받고 있지만, 해결책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의 신속한 접종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개발된 백신 중의 하나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옥스퍼드 대학과의 공동 연구로 개발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화이자 백신과 모더나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보다 더 우수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많은 나라들이 두 제약회사가 만든 백신의 접종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을 종식시키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백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헝가리 출신의 과학자 카탈린 카리코(Katalin Karikó) 박사는 이미 1990년대부터 메신저RNA(mRNA) 방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백신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리코 박사는 어떤 제약회사로부터도 연구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업적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카리코 박사의 연구를 지원해 준 곳이 펜실베이니아 대학이었습니다. 카리코 박사는 1990년부터 5년간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부터 연구 지원을 받았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 지원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카리코 박사는 2005년에 이르러 마침내 메신저RNA 방식의 기초원리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10년에 걸친 연구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메신저RNA 방식의 백신 연구가 완성된 것입니다. 카리코가 개발한 메신저 RNA 백신 방식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회사가 바로 화이자 제약과 함께 백신을 공동개발한 바이오앤테크(BioNTech)인 것입니다. 화이자 제약과 함께, 동일한 메신저RNA 방식을 사용하는 모더나(Moderna)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리코 박사의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진들이 보스턴에서 상업화시킨 회사인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길게 설명드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학의 기초 연구는 즉각적인 효용성을 보여주지 않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당장 상업화하기 힘든 이론적 연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10년간에 걸친 지원이 없었다면 카리코 박사의 연구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기초 연구가 상업화되는 과정에서도 독일의 마인츠 대학과 미국의 하버드 대학이 공헌하였습니다. 기초 연구를 위한 대학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인류는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들은 누적된 재정 적자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 대학의 열악한 재정적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는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학의 기초 연구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매우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대학 지원 정책을 자율성과 효율성 강화의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주실 것을 정부와 교육 당국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학이 핵심 기초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는 국가가 미래를 선도해 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인 동시에, 미래의 불확실성에 미리 대비하는 기초 연구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136년 전에 창립된 연세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성경 말씀(마태복음 5장 14절)에 따라 이 땅에 짙게 드리운 어둠을 밝히며 학문과 교육의 사명을 다해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검은 질병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교육 매체의 혁신을 선도하며, 어둠을 밝혀가는 자랑스러운 빛의 사명을 이어갈 것입니다. 팬데믹의 어둠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연세에게는 ‘어둠을 밝히는 빛(Lux in tenebris)’이라는 사명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창립 136년을 맞이하는 모든 연세 구성원들에게 주시는 요한복음 1장 5절의 말씀, “빛이 어둠 속에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맡은 하늘의 사명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세상의 빛’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팬데믹의 어둠 속에서도 진리와 자유를 향한 연세의 도전을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136년간 연세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고, 우리 앞길을 인도하셨던 주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5월 8일

연세대학교 총장 서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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